1931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나 1959년에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했습니다. 1970~1976년까지 건축디자인 전문 잡지 <까사벨라>, 1977~1981년까지 <모도>, 1979~1985, 2010~2011년에는 <도무스> 편집장을 역임했습니다.
까르띠에, 에르메스, 스와로브스키, 바쉐론 콘스탄틴, 슈프림, 알레시, 비사짜, 베니니, 자노타 등 세계적 기업과 함께 일했으며 1979, 1981년과 2014년에 이탈리아 황금나침반상(Compasso d’Oro)을 수상하고 프랑스에서는 문화 예술공로 훈장 기사장(Chevalier des Arts et des Lettres)직함을 수여 받았습니다. 또한 뉴욕의 건축가 협회의 명예 직함을 받았으며 밀라노 공대에서는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나폴리 지하철 역사 디자인으로 2003년 이탈리아 건축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베로나의 비블로스 아트 호텔로는 2006년 유럽 최고의 호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건축 및 디자인에 대한 높은 기준을 세우고 휴머니즘이 가미된 건축 예술의 환경을 조성한 건축가로서의 공헌을 인증받아 유로피안 건축가상을 수상하였고 2017년에 “디자인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A&W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이너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디자이너인 멘디니는 디자이너가 되기 전 건축 디자인 관련 잡지의 편집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특히 그가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Casabella, MODO 및 domus는 멘디니가 편집장을 역임하며 세계적인 권위의 잡지로 이끈 것입니다.
이 잡지들은 이탈리아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였고, 혁신적인 이념을 제공하며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과의 투쟁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탈리아의 디자인과 산업, 특히 198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60, 70년대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디자인을 이해하고 있는 기업이 많았습니다. 멘디니는 세계 곳곳에 숨겨진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발굴하여 이들을 이탈리아 기업과 연결시켰습니다. 그 결과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이탈리아 산업이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1989년 멘디니는 동생 프란체스코 멘디니와 아뜰리에를 엽니다. 지금까지 편집장으로 살아왔던 인생과는 전혀 다른 길에 들어선 그는 50대 후반에 초보 디자이너가 된 것입니다. 아뜰리에를 시작하고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는 히로시마 항구의 기념탑과 네덜란드의 그로닝거 미술관 설계였습니다. 초보 디자이너 멘디니는 그동안의 실험을 통해 축적된 아이디어와 경험을 현실 공간에서 구현해 내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디자이너보다 새롭고 기발한, 젊은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그로닝거 미술관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놀라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로 불리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도 선정되었습니다.
“Questa lampada porta fortuna”
이후 멘디니는 세계적인 클라이언트들과 수많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때의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단지 기업의 활동이 아니라 당대 디자인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2010년에 디자인한 라문 아물레또 스탠드 조명 디자인의 역사적인 가치는 LED의 장점을 최대한 잘 살린 링 모양으로 조명의 균일도를 높였으며 투명 소재를 사용하여 조명의 기계적 메커니즘을 돋보이게 한 부분과 스프링과 전선이 없이 원과 직선만으로 만들어진 미니멀한 구조 안에 다양한 색깔을 믹스매치해 인간적 감성을 불어넣었다는 것입니다. 그 뛰어난 기능성과 작품성으로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에날레 뮤지엄, 시카고 건축과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 디자인뮤지엄, 칭화대아트뮤지엄에서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램프는 행운을 가져다 줍니다”
- 알레산드로 멘디니 -
라문 아물레또, 안나G, 프루스트 의자, 그로닝거 뮤지엄, 히로시마 파라다이스 타워, 알레시 본사, 스와치 시계, 하노버의 버스 정류장, 비사짜 쇼룸, 스위스의 아로사 카지노, 후쿠이 공룡 박물관의 조형, 나폴리 지하철 역사, 베로나의 비블로스 아트 호텔 등이 있습니다.
복잡한 색과 형태의 논리를 가진 멘디니의 디자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그 밑에 잔뜩 숨겨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표피적인 것에서 심층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가치의 스펙트럼을 이룹니다.
겉으로 보기에 멘디니 디자인은 유머러스하고, 때론 환상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 디자인이나, 아무 작품이나 표현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닙니다. 또한 멘디니 디자인의 가장 깊은 부분에는 표피에서 잘 보이지 않는 보다 격정적인 가치들이 깔려 있습니다.
멘디니는 이런 특징의 디자인을 통해 근본적으로 공격하고 극복하려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멘디니가 실험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디자인 운동을 하면서부터 타겟으로 삼았던 것인데, 바로 기능주의나 상업성에만 집중하는 모더니즘적 디자인이었습니다. 그의 디자인들은 대체로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이지만 그는 사실 자신의 그런 디자인으로 기존의 기능주의적 디자인들을 과격하게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트러블 메이커란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멘디니가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가치는 자신의 노력과 시대의 도움으로 1980년대부터 사회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전의 디자인을 극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 유형을 창조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디자인은 세계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디자인의 흐름과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멘디니 개인에서 시작된 디자인적 가치는 이탈리아 디자인 사회로 확대되었고, 나아가 세계 디자인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멘디니는 단지 한 명의 뛰어난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살펴보아야 할 디자이너인 것입니다.